<사와에의 아픔을 듣게 되다>
13-11-07 1,237
지금 나미에는 도쿄안에서의 작은시골 후지노모리(富士の森)의
야나가와 사와에의 집에 나츠야스미(여름방학)이라서 와 있다.
사와에의 엄마가 잘라오신 스이카(수박)을
먹으면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전부터 나미에가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사와에는 말하는 단어.숙어가 부유계층의
냄새가 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물어보았다.
"사와에, 너 여기가 원래 고향이니?"
사와에는 갑자기 잠깐 눈을 감고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뜨고
佐>"아니, 원래는 카스미가세키에 살았었어.
그런데, 아빠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서우리집에 차압이 들어왔어.
그래서,모두 그렇게 넘어가고 이곳에 겨우 집을 마련하고살아가고 있는거야."
私>"어린나이에 충격이 참 컸겠구나!"
佐>"그럼, 정말 엊그제까지 내가 쓰던 장난감까지 모두 딱지가 붙어지게 되니
정말 슬프더라고...
지금이야 그 오모챠를 가지고 놀 나이도 아니지만..."
私>"오모챠(장난감)까지는 좀 너무했다. 아무리 그래도...."
佐>"그만하고 빨리 스이카(수박)나 마저 먹자."
私>"그래, 와~! 아마이(甘)~~!^^"
사와에는 온천매니아였다. 그래서, 집에 온천에 관련된 화보집이 있는데,
나미에와 같이 보고 있었다.
...(별도로)...
<어딘지 모르게 부유층냄새가 나는 사와에>
청소당번사건으로 나미에와 사와에는 오사나나지미(단짝)가 되었다.
그런데 나미에가 느끼기에 사와에와 같이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부유층냄새가났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이 그러한지 나미에는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나미에는 사와에와 함께 카스미가세키의 한 번화가를\
걷고 있는데 사와에가 의류점 쇼윈도안에 있는 다양한 색상의 의류를
유심히 보고 있었고 마치 집에서 큰거울을 보고 옷을 갈아입으며
각종 예쁜 포즈를 취하고 패션쇼에서
하는 캣워킹을 하는 듯한 미부리(몸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그런 것까지는 나미에를 비롯해 그만한 또래의 여학생들도
다 하는 것인지라 "그런가보구나~!"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특히나 상가에 왔을 때 그것이 더 느껴졌다.
이런저런 상품들을 너무 유심히 보는 것도 그렇고 팜플렛이 있으면
그것도 특히나 의류팜플렛을 보면서 중간중간에
"음~! 맞아!" &"음~! 아니야!" &"음~! 나한테는 안 어울려~!"
&"경제성을 고려해야지!"
등등의 감탄사및 멘트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몇번인가 사와에의 연습장에 이런저런
고급의류 디자인을 스케치해놓은 것도 여러번 보았다.
그리고 사외에는 아는 것이 많았다. 특히나 경제나 대중문화쪽에 해박했다.
나미에는
"(분명히 사외에는 처음부터 시골소녀가 아니었어.
분명히 부유층이었을거야.)"
하는 직감을 또한번 발휘했다. 그리고 언제고 한번
물어보려고 했지만 기회가 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나미에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스무고개를 하면서
그 해답을 확인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별도).....
시라하시 나미에는 학생게스트 오디션에 합격하여 이제 곧 학생게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디션에 출전했던 마츠무라 타미에의 속마음까지 꿰뚫어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척 낙심하는 타미에의 속마음을 나미에는
알고 있었다.
...(별도)....
"덴 정민 툭 더 픽쳐(글쎄 정민이가 그 사진을 쳐다보더니)로트 오버 잇, 덴 풋 잇
백 온 더 블랙보드(뭐라고 쓰고 다시 칠판에 붙여놨다는 거 있지.)"
"홧 디드 쉬 라이드?(뭐라고 썼는데?)"
"쉬 풋 언 엑스 온 더 월드 '언디즈'앤드 풋 '팬티스'인스티드."
...(별도)...
스승과 제자의 사랑은 소설이나 연속극등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런데,혁명기를 살았던 중국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에게도 사실은 제자와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있었다. 루쉰은 1887년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난징에 있는
학교에서 4년동안 공격한 후에 1902년 일본에서 유학하였고 2년후에는 일본
센다이(仙台)에 있는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무렵부터 문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여 1906년 의학교를 자퇴했다.
일설에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첩자로 몰린 중국인이 처형 당하는 모습을 보고
받은 받은 충격이 문학에 뜻을 두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도 한다.
1909년 귀국한 그는 중학교와 사범학교의 교사생활을 하면서 문학에 몰두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성행했던 백화운동에 자극을 받아 첫작품으로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써서 중국봉건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 이후에도 '아큐정전阿Q정전' '故鄕'등의 걸작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1920년부터 1926년까지 루쉰은 베이징대학과 베이징여자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러나,1926년에 베이징사범대학 제자를 비롯한 마흔일곱명이 두완치뢰이
段祺瑞정부의 군대에 사살되는 3.18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루쉰은 그의 제자였던 쉬광핑 許廣平과 함께 베이징을 떠났다.
사실 루쉰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샤먼대학 廈門大學의 교수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쉬광핑이 광동성으로 떠나자 반년후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녀를 따라 광동으로
갔다. 마흔여섯의 나이에 사랑을 불태운 것이다.
이윽고, 두사람은 광동성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두사람에게 평화로운 생활은 찾아오지 않았다.
...(별도로)...
마오 쩌둥이후 오랫동안 정체된 경제수준에서만 살아왔던 본토가 홍콩.마카오를 따라가기에는
너무나도 늦었습니다. 의식주 하나하나가 '그냥 필요하면 됐지 무슨 모양이 사치스럽고 등급을
따지냐?' 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본토인들은 홍콩인들에게 촌놈(이나카모노)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본토에서 거의 의무적으로 가르쳐온 노동의 신성함과 일을 하는
사명과 책임감에 대한 멘트는 홍콩인들에게 우스개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박통시절에 불렀던 ♪살기좋은 내 마을 우리집으로 만드세 ♪를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렇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마오 쩌둥이 신중국화라고 해가지고
..(별도로)...
학교에 정화조를 푸려고 위생차차량이 왔다. 그것도 '꽃같이 아름다운
'히타치 오-바-나이토죠시코의
여학생들이 수업이 한창인 시간에...
정화조 맨홀 뚜껑을 열고 저 깊고깊은 밑바닥의 똥오줌까지
다 빨아들이고 있다.
물론 금방 고약한 냄새가 난다. "쿠~~사~~이!!"
당연히 전교생 모두 창문 다
닫고 코막고 구토까지 나기 일보직전이다.
아휴~! 계집애들~!^^똥냄새 오줌냄새 고약한 줄은 아니?
그리고 뭐가 그렇게 고약하냐? 다 자기들 뱃속에 들어있다가 나온건데...
지금 이러고 있는 자리에 파사공주 후미노 신미호도 있다.
신미호~!^^ 똥냄새 오줌냄새 고약한 줄은 아니?
그런데 니가 지금 저 구린냄새만큼 풍기고 다닌
냄새는 잊고 있지? 나는 꽃향기만 풍기고 다닌 줄 알지?
니가 잘 보이고싶은 그 잘난 왕자님들에게만...^^
...(별도로)...
"오카짱~~!(^^)나 엄마의 품이 너무 그리웠어~어!^^"
"에이그~! 그런 가시내가 친정을 10년만에 오니? 됐다! 이것아!^^"
"고멘고멘~!^^ 그러니까 罰로 이거 터는 거 도와줄께. 응?"
"오냐! 이것아~! 이거 좀 놓고 이야기 하렴. 덥다. 더워!"
지금 옆쪽에 있는 나미에(娘)와 남편은 이 엄마가 마치 소녀마냥
지 외할머니한테 안기는 모습을 보고 신기한 듯이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오토짱~! 엄마 오늘 왜 저래?^^"
"나미에~! 저게 바로 가족애라는 거야.^^"
egg~!^^ 이 엄마도 너의 엄마이기 이전에 너의 외할머니의 딸이었단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감동이 없어요. 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