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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당숙, 아버지들이 없는 가정들이 왜 많지?

黃遵守 2023. 4. 15. 07:22

talking. 杉村 政子(1950年生)

 

나는 유치원일도 유치원일이지만 딸역할도 그만큼 중요시 여기는지라

전쟁 때 애꾸가 되셨고 또 술로 세월을 보내시는지라 당뇨까지 있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뵈러 간다.

 

"마사꼬~! 왔니?"

"예~! 아버지~! 오늘은 괜찮으세요?"

 

"뭐 매일매일이 다 그저 그렇지 뭐.

그런데 유치원 애들은 다 파해주고 온거야?"

 

"예."

 

"그애들은 좋겠어. 평화로운 세상에서 평화롭게 춤추고 노래하여 뛰놀고..."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는 흑백으로 된 와후쿠차림의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찍은 사진한장이 있었다. 한쪽이 꼬마인 아버지의 사진이고

옆에는 동생들과 사촌들이었다.

 

"얘네들처럼... 전쟁에 불려나가서 의미없는 개죽음을 당하지 말아야하는데....

유독 요즘꿈에 어린시절에 나와 뛰놀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곤 해."

 

아버지가 애꾸가 된 것은 중국전선에 나갔다가 중국군이 던진 폭탄에 눈을

맞아서라고 한다. 한눈은 겨우겨우 살렸지만 한눈은 영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어린마음에도 그게 참 궁금했다. 어째서 우리집에는 삼촌.당숙들이

젊은나이에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비단 우리집뿐만 아니라 내 친구집에도

아버지,삼촌,당숙들이 젊은나이에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고봤더니 괜히 세력확장한다는 전쟁터에 불려가서(솔직히는 끌려가서)싸웠다가

전사아니면 신체의 한군데가 불구가 되가지고 온거라고 한다.

 

비단 우리 스기무라家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밑의 삼촌은 중국전선에 나갔다가 중국항일게릴라들과의 전투에서

그들이 던진 폭탄에 맞아 죽었다고 하고 그밑의 삼촌은 과달카날전투 때 미함대에서

쏜 함포에 맞아 죽었다고 하고 넷째삼촌은 비루마(버마)전선에서 열약한 전투실태에

지칠대로 지쳐서 이기리스군(영국군)에 항복하러 탈영하다가 영어를 할줄 아는 삼촌이

그럴 가능성이 많다는 낌새를 눈치 챈 오장이 추격하여 사살되었다고 하고

아버지와 동갑인 큰당숙은 노몬한전쟁 때 소련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그뒤로

소련땅 이름도 몰는 산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며 그밑의 당숙은

사이판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아메리카군(미군)이 사이판을 공습할 때 "죽을지언정

항복이란 없다! 덴노헤이카 반자이~!!"하고 수사이드클리프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또한 여자들이라고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우리어머니께서도 또래들과

함께 군복을 재봉,세탁해야했고 또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포탄,총탄도

닦아야했고 출정하는 군인들을 배웅하는 식 때 '애국행진곡'을 합창하는데 동원되어야만

했고 또 전쟁연료로 쓸 자원을 운반하는 일에 동원되어야만 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적군이 국내로 들어왔을시에 끝까지 싸우라고 총검술 아니면 죽창 찌르기

하는 훈련을 받는데 동원되어야만 했다고 한다.

 

나는 다시 유치원으로 왔다. 그리고 각반샘들에게 가창과 율동을 시켰다.

 

나는 '스물네개의 눈동자'의 이야기를 알고있다. 그곳은 비록 한어촌마을의 소학교

지만 거기에 보면 자신이 어릴적에 가르쳤던 꼬마제자들이 좀 더 커서 전쟁터에 끌려가서

죽어서 묘표에 이름이 적혀서 돌아오는 내용이었다.

 

아~! 아직은 세상을 잘 모르기에 맑은 눈동자들.... 뭐 안클 수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