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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땅바닥에 버려졌을까?

黃遵守 2017. 9. 8. 00:57

나는 이런것을 볼때마다 이것을 길바닥에 버린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기보다는

이것을 길바닥에 버리도록 만든 사람들(교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꾸짖고 싶다.

사람들이 개신교인들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얼마나 컸으면 이런 전도지를 다 길바닥에

버리겠나? 특히나,  내용속에 나오는 사영리의 내용. 사람들이 교회와 교인의 실체를

너무나도 잘 아는데 사영리의 내용을 들으려고 하겠나? '옹야~! 그러니까 니나 잘해~.'하지.

교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아! 한번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별도로)....

내가 손편지를 끊어버린 1호대상자들...

우리교회청년부들중에 나의 셀장누나였던 곽뭐자매, 내가 열심히 손편지를 줬는데

무시하기만 했던 문뭐자매,송뭐자매,정뭐자매 그리고, 캐나다에 갔을 때 내가 항공우편으로

손편지를 보내줬는데 답장도 안해놓고서 귀국해 와가지고 큰소리를 친 안뭐자매.

 

대학시절에 나랑 동갑이었던 내가 손편지를 한 오십통 보냈는데 답장은 억지로 한통만

썼던 별량에 사는 유뭐녀석. 그리고 허뭐선배, 최뭐후배, 남뭐후배

 

내가 영수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내가 마음이 있어서 크리스마스카드를 줬는데 받기만 했던

남뭐후배

...(별도로)...

<후일담 하나!>

그러니까, 때는 98년도였지. 그때는 흔히 IMF시대라고 불리우는 시절의 서막의 시절이었어.

바로 내가 다니던 전문대에 학생들이 원서를 접수하러 오는

날이었지. 나는 그때 별로 정을 못느껴서 장기결석을 하고있다가 겨울방학까지 연결되어온

내가 재학하는 학교인지라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 위선이기도 하고 말이야.

 

아뭏튼 그날에 우리교회 청년부에서 노방찬양을 했거든. 나는 그렇게 편한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신앙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의미로 그렇게 재학하는 학교문앞에 가서 원서를 접수하러

오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찬양과 율동과 그리고, 전도지를 돌리는 일을 했어.

 

나하고 몇명은 찬양과 율동을 하고 몇명은 전도지를 돌렸어.

 

뭐 뻔할 뻔자잖아.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않는 곳에서 그 전도지가 버려지고 있다는 것 말이야.

 

뭐 이제는 알만큼 다 알고 하는거잖아. 그냥 '듣든지 말든지'하는 마음으로 나는 찬양과 율동을 했어

그리고, 그거 한 중반쯤 되었을 때 이제 남자후배인 박뭐형제가 나한테 와서 

 

"형! 우리 이제 주우러 갑시다~!" 하고 나를 부르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 박뭐형제와 함께 이제 학교의 메인건물에 가면서 이제 하나둘씩 발견하고 그것을

줍기 시작했지 그리고, 역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쓰레기통에 가가지고 역시나 모아 버려져있는

전도지를 발견했지. 나는 박뭐형제에게 "허허!^^ 역시나 여기 다 모여있구나!" "그렇군요.^^"

 

하면서 박뭐형제랑 그것을 주워왔어. 심하게 뭐 묻거나 찢어지고 발자국이 찍힌 것은 빼고 말이야.

 

그때도 사실 그 생각을 좀 해봤지. "(왜 사람들이 이 전도지를 십리도 못가서 버려버리는가?)"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야. 뭐 그뒤로 내가 하나하나씩 체험하면서 자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후일담 하나!>

 

역시나 IMF시대의 서막이 시작되던 시기였지.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끝나고나서 얼마뒤에 

우리교회의 청년부들이 우리동네이기도 한 곳의 삼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하게 되었어.

 

그런데, 우리 1년선배형중에 한명인 정뭐형제가 돌린다고 만들어놓은 전도지들중에 몇개를 보더니

이제 청년부의 최고참으로 곧 결혼도 준비하고 있는 강뭐형제에게 답답하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여기에 교회연락처도 안 적혀있고.. 이게 뭡니까? 그리고, 이거 다 어차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거잖아요!" 하면서 애타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하더라구. 그런데, 나도 어느정도 동의하는지라

강뭐형제에게 "삼촌!(개인적으로 나한테는 족보상 삼촌임) 이거 솔직히 형식적이지 않습니까?"라고

하니까 그 강뭐형제가 하는말이 "야! 이거 보고나서 교회에 오고 안오고는 그 사람들의 마음이야.

어디 한번 버리라면 버리라고 해. 나는 돈을 여기저기 뿌리면서 가지라면 가지라고 하는 사람도 봤다!"

하더라구.

 

그리고, 내가 그때 순천CCC에 있었잖아. 나보다는 한살 적은 그 문서순장인 김뭐자매가 나한테

노방찬양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형제님!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만약! 불교측이나 다른 종교에서 그렇게 길에서 형제님한테

뭐 유인물을 나눠주면 형제님은 그거 받으시고 절에 가시고 성당에 가실건가요? 아니잖아요!

그리고, 형제님! 그런말 모르시나요? '관객은 없어도 연극은 계속된다!'라는 말요."

 

그말을 들으니까 그럴듯도 하더라구.

 

그런데, 나는 그때 정말 확신하고 있는 것은 있었어. 내가 불과 얼마전에 교회청년부들 여러명과

CCC멤버들 몇명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거든. 그런데, 답장도 없을 뿐더라 반응도 시원찮아.

또 하나같이 받는데만 익숙해져있는 이기심들만 가득하고 말이야.

 

사람들이 말이야. 정말 자신을 향한 진심어린 손편지글을 좋아하고 데이때 마음이 담긴 과자를

더 좋아하지 그런 실질적인 사랑도 없는 배경하에 무조건 예수를 믿으라니 교회에 나오라니 하는

그런 전도지를 좋아하겠어? 당연히 내 던져버리지.

 

...(별도로)...

<후일담 하나!>

아~! 흔히 초심을 가지라는 말을 하잖아. 그런데, 그 초심은 말이야.... 현실을 겪고나서 꺾이기

마련이더라구.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이 메일맨이 왜 지금은 손편지를 거의 쓰지않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아신다면 말이지. 정말 옆에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자발적으로 손편지를 썼던

나였어.

 

그런데, 매번 답장도 안오고 "답장 못해줘서 미안해~!"하는 기분나쁜 사과아니면 "나는 안주니?^^"

라는 기분나쁜 부탁만 듣고 말이야. 나도 사람이잖아. 시간 내가지고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썼는데

나는 감정이 안생기겠니 그래가지고 거기에 대한 시시비비가 잦곤 했어.

 

그런데, 그때는 말이야. 그렇게 했어도 계속 이어나간 이유가 첫째는 내가 메일맨으로서의 명예가

있는 사람이었는지 내 스스로의 명예는 지키고 싶었고 (자기들하고 똑같은 놈들이 아니까 말이야.)

둘째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기때문이었고 셋째는 그때 투병을 해가지고 말을

잘 더듬어서 써서 주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랬던 뜨거웠던 이 메일맨도 이제 바보같이 답장도 안오고 시비만 잦아서 보람도 없는데

멍청하게 손편지만 써줬던 것은 결코 아니야. 나도 끊어버릴 때는 과감하게 끊어버렸어.

 

그것도 내가 제일 많이 손편지를 주었던 이들이 그 1호대상자였거든.

 

나는 그때 01년도에 군에 간 형제들에게 우편으로 청년부주보를 발송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나는 비공식적으로 장기결석자들중에 몇명을 대상으로 청년부주보를 같이 발송해줬거든.

그런데, 그 비공식적으로 하는 대상자들도 01년중반부터 끊어버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손편지는 완벽하게 중단했거든. 사실 손편지를 줘도 보람이 될만한 대상자를 찾을 때까지는

잠정중단하는 거였거든. 내 스스로는 가상의 대상자에게 계속 편지는 쓰고 있었어.

(내가 누구지?^-^ 작가란 말이야.)

 

그러던중에 우리교회 청년부에 송뭐자매가 갑자기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더라구.

 

그런데, 그애가 내가 정성스럽게 보낸 손편지에 여러번 답장을 안해서 손편지를 끊어버린 1호대상자였거든.

그애가 여름철에 갔어. 02년도에 내가 누구한테 손편지 보내는 거 봤어?^-^

그냥 내 노트에 시즈에한테, 타미에한테, 타미키한테, 나미에한테, 모모에한테만 하고싶은 말다 썼거든.

 

그래가지고 한 한달정도 되었을 무렵이었어. 우리교회홈페이지 청년부게시판에 그애가

"저도 편지 써주세요! 군지체만 사람인가요?" 하면서 자기 도쿄에 주소를 주더라구.

그런데, 그 다음에 자기도 양심이 있는지 "...뭐 안해주시려면 말고요." 를 썼더라구.

 

나 그거 보면서 무슨생각이 든지 알아? "(아~!^^ 송뭐 얘도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99년도 크리스마스이브때 청년부모임 때 내가 크리스마스카드를 줬을 때

그애가 "오빠! 있다가 카드 답장해줄께~"라는 빈말만 흘려놓고 답장 안해줬던 그 괴씸한 일이

스쳐지나가더라구. 그래서, "(그래! 너 딱걸렸어! 그래! 말 잘했다! 군지체만 사람이고 너는 사람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사람 아니야? 가시내가 지가 평소에 배경을 잘 만들었어야지. 응? 야! 미안하지만, 나는

못해주겠다야. 응?^^ 딴데가서 알아봐라.)" 하고 그애의 글에는 '나는 발송담당이지. 편지담당 아니야.'

라는 리플만 하나 해줬어.

 

 

 

 

<고모가 우리들의 선배(?)> 14-09-15 3239

-talking 16才 結城 眞梨惠(1996年生)-

 

*세나카의 대역 맘대로 캐스팅 해서 죄송..

 

유키 세나카(結城 世奈香)...우리 고모의 이름이다. 유키는 결혼전의 성이라서

지금은 안쓰고

여기서는 우리고모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쓰도록 하자.

 

우리고모는 비누에 형틀이 되는 조각을 만드는 실용미술사이다. 나랑 나리에는 가끔 시간을

내서 작업장에 고모를 만나러 간다.

 

이번에도 주문이 한참 들어와서 고모를 비롯한 직원들이 손이 무척 바쁘다.

(고양이손이라서 빌려야

할 만큼) 고모는 나랑 나리에가 아스카오-바-나이토 죠시코를 들어갔다고 하니까 비누액을

형틀에 넣는 작업을 하다가 잠깐 멈추고 "너희들이?"라고 물어보았다.

 

"고모, 왜 그러시는데요?"

 

고모는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내가 그 학교를 다녔거든."

치큐노 효멘와 뿌레또(카타이 이타죠-노 칸반)니 오오와레떼  오리, 니혼후킨데와 타이헤이요

뿌-레토 휘린삔카이 뿌-레토나도  뿌-레토노 운도우니 욧떼 단소-가 우고키,카잔세이카쯔토-가

히키오코사레루,니혼렛토우니와 카쯔단소-(카고니 리쿠카에시카쯔토-시,카쯔도-스루 카노우세이

노 오오키이 찌소우노 와레메)야 카잔가 오오쿠,지신가 오오이.

 

 

*반쪽짜리이야기 하나!... 99년도의 성탄절에도 역시나 반쪽짜리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었어.

그때 말이야. 나는 여전히 환상에 사로잡혀있는 그 바보짓을 했어. 이제 새천년도 오는데

새천년을 의미있게 마무리하고 싶기도 하고 또 내가 우리교회와 순천ccc 그 쭉정이같은 인간들과

기본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문구사에서 또 크리스마스카드를

사서 또 정성스레 써서 또 돌렸지. 그것은 혹자가 평가할 때 황승이란 사람이 자신은 남들과

기본의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또한번 반쪽짜리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할 거야. 아~! 헌천년의 마지막해의 그 크리스마스카드조차 역시나

답장이 없었어. 뭐 나이가 있으니까 주로 열살안팎의 청년들에게 돌렸어. 그리고, 뭐 그때 교회 청년부를

담당하시던 부목사님과도 뭔가 사연이 있는지라 부목사님도 한통 써서 드렸고 말이야.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교회청년부에서 나름대로의 모임이 있었거든. 나는 몇명한테 주고 있었어.

그런데,나한테 크리스마스카드를 받는 후배중에 송모자매가 나한테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자

"고마워! 있다가 크리스마스카드 답장 줄께~!" 라고 하더라고. 나는 "(안줄 거 다 알고 있다.말이나 말든가...)"

하면서 그냥 들어만 뒀어. 2년뒤인 2002년도에 말이야. 그애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결정적으로

보복을 했어. 내가 끊어야하는 시기는 완전히 끊어버리거든. 내가 언제까지나 멍청하게 손편지 써줄 수는

없잖아. 그때 역시나 크리스마스카드의 답장이 없었어. 정말 또 반복이더라고.

 

그 2년전 크리스마스때 "줄때는 받을생각하는거 아니야~!"라고 했던 그 문모자매한테도 역시나 줬고

역시나 답장 못받았어. 그런데, 그애들도 내가 답장 못받은 것을 칼로 쑤셔버리고 싶도록 싫어한다는 것은

알더라. 그 이듬해 봄에 대예배가 끝나고 우리교회청년부가 돕는 그 요양원에 가는일에 내가 빠진다고

하니까 곽모형제가(그애도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은 애중에 한명임.) "형! 크리스마스카드답장을 못받는 것이

기분나쁘다고 했지? 그런데, 내가 왜 답장 안한줄 알아? 나도 보냈다가 답장을 못받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런것을 굳이 답장해야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때 청년들 여럿이

벌떼들처럼 따져대서 당황한지라 "의무는 없지만 예의는 있어!"라는 대답이 생각이 안나는 거야.

 

그리고,문모자매 있잖아. 옆에서 조금 우는소리로 "나도 그동안의 손편지에 답장을 안한 것은 잘못이야~!"하고

지가 미안한줄은 아는 소리를 하더라. 뭐 순간적인 연극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좌우지간에 99년도의 크리스마스카드돌림도 역시나 반쪽짜리 이야기로 끝났어....

 

東ぉ名和ケ森-町, 西ぉ名和ケ森-町, 南ぉ名和ケ森-町, 北ぉ名和ケ森-町,

 

東ぉ名和ケ夏-町, 西ぉ名和ケ夏-町, 南ぉ名和ケ夏-町, 北ぉ名和ケ夏-町,

東ぉ名和ケ春-町, 西ぉ名和ケ春-町, 南ぉ名和ケ春-町, 北ぉ名和ケ春-町,

 

東ぉ名和ケ秋-町, 西ぉ名和ケ秋-町, 南ぉ名和ケ秋-町, 北ぉ名和ケ秋-町,

소레데모. 타다노. 록사이사시까나이까라. 다이죠부쟈나인데스까?

오지이상니. 오이시이. 쵸코렛또오. 아게다이가. 오니이상또.

와타시또노. 스마우토꼬로가. 교오리가 앗떼. 소레데모 보이스메-루오.

오꿋따데쇼우*

 

소노 보이스메-루데모. 요꾸. 시맛따라또. 오모이마스*

 

니센요넨니. 쥬우큐우사이다또. 잇따데쇼우 다까라. 슈우가쿠노우료꾸노.

벵꼬우오. 넷신니나사이요*

 

노조무 다이각꾸에. 카나라즈 잇떼 호시이데스* 

 

오니이상와. 도코노. 다이각꾸니. 이끼따이까와. 와까라나이가. 와타시와.

가이고꾸가. 모꾸효우데스요* 소레데. 가이고꾸고노. 다이각꾸니. 이꾸노오.

모꾸효우니 시떼이마스* 와타시가. 슈우각꾸노우료꾸시껜오. 우께루도끼까라.

쥬우핫사이(쥬우니넨세이)데. 아노지끼니 나루또. 오니이상와. 니쥬우욘사이데스네*

 

다이각꾸모. 호톤도오와리다시. 겍꼰노 쥰비사에스레바. 이이데스요네*

 

오니이상가. 겍꼰오. 니쥬우록사이노 고로스루. 토시떼모. 와타시와 다이각세이다나..

 

...중간에 헛소리^^(완투 도라이브 토요타데스 또 쥰비사에아레바)

 

...쑤이쩌. 징지. 꿔지화. 더. 파짠. 꺼. 꿔. 짜이. 징지. 샹. 더.

이라이. 꽌시. 허. 허쭤. 꽌시. 뿌똰. 지아션.

 

...쩌. 뿌딴. 메이여우. 삐미엔. 씬. 더. 징지. 뭐차. 판얼. 쟈취. 러. 꺼꿔. 지엔. 

허.꺼. 띠취. 지엔. 짜이. 징지. 샹. 더. 징쩡. 징지. 시흐리. 슝허우. 꽌시. 쭝.

치.처. 쭈다오.허. 쥐에딩싱.더. 쭤용. 얼. 징지. 시흐. 리. 뿨뤄. 더. 꿔지아.

 

...(별도로)....

 

博>"내가 뭐?"

 

우리분단에 있는 야마모토 히토미(山本 瞳)도 거들면서

 

瞳>"맞아! 너 맨날 우리를 따라하고 있잖아." 해주었다.

 

히로시는 맨날 우리 3분단 다른아이들의 하는 것을 입모양만 벌리면서 따라하고

있는 애다. 한번도 자기가 스스로 공부해와서 우리랑 맞춰하는 법이 없다.

왜 이런애랑 같은분단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시즈쿠를 한번 쳐다보았다. 토야마 시즈쿠(外山 シズク) 우리옆집에 사는

아이인데 학교에 와서도 담임샘이 물어보는 것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좀처럼말이 없다.

더욱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조용한 성격인데다가 우리반에서 다섯손가락안에드는 우등생이라는 것이다.

 

시즈쿠의 한자이름은 '물방울'을 뜻하는 눈설자밑에 아래하자가 있는 한자를 쓰는데

시즈쿠라는 이름대로 하면 '조용히'라는 뜻이다. 정말 이름대로 정말 조용히 있는아이이다.

내동생 마이(吉澤 昧)도 나도 시즈쿠에 대해서 상당히 신비롭게 생각하는편이다.

 

....(별도로)....

<요쥬로는 내 인생의 지뢰인 것일까?> 

增田 佑未香(2002年生)

 

아! 저 요쥬로의 순진함이 요즘은 무섭게 느껴진다. 혹시나 요쥬로는 뻔히 다 알면서도

나보고 한번 찔려보라는 듯이 저렇게 순진한 척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있을 때 요쥬로에 대한 흉이란 흉은 다 같이 봐서 나도 요쥬로를 한심한 캐릭터로

만들어버린 공범이다. 

 

이런 내가 요쥬로가 준 이 손편지와 이 마음이 담긴 이 선물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아~! 마치 내 인생의 지뢰를 밟은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사람을

고를 권리가 있다. 그런데, 요쥬로가 나와 내 친구들의 인생에 끼어들면서 아름답기만 한

내 명예에 마이너스를 주고 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다 받아줄 수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이성들의 마음을 다 받아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 한심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저 나사케나이호도 하시모토 요쥬로를 ....

 

...(별도로)...

 

<더이상 나에게 '사라니!'로 다가오는> 14-05-22

talking.36才 森高 靜惠(결혼전 吉岡 靜惠)

 

소레와... 히토메보레 츄오죠시코에 근무하는 동료교사들이 회식하는 한 대형식당...

 

교장샘,교감샘의 연설과 또 선생님들의 각자의 이야기를 하시고 또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혼자 생각에 깊이 빠져있었다.

 

"(나는 정말 교사가 맞는 것일까? 지금 후배이자 제자인 아이들이 나를 은사로 생각해줄까?

정말 여기에 답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많은선생님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시는 동안에 유독 멍하게 아무말도 않고 있는 

나에게 독일어담당 모모세센세이(남자분)께서 

 

"모리타카센세이께서는 왜 그리 조용하세요?"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많이 피곤해서요.^^(고수준의 학생들때문에)"

 

정말 피곤하기는 피곤하다. 안그래도 고수준의 후배들이자 제자들인 학생들을 만난것도 나를 

피곤하게 하는데 나를 더욱더 피곤하게 하는 정보를 내가 듣게 된 것이었다.

 

도서실에 책을 정리하러 오는 한 학생에게서 들은 소식이었는데 한 학생에게서 그 국제성을 

띤 고수준의 학생들이 히토메보레츄오코의 남학생들과 같이 신탈아입구란 써클을 만들어서

학교근처의 한 텍에서 같이 고수준의 문화생활을 즐기며 그 안에서 이타리아고,도잇츠고,

에이고,후란스고를 자유롭게 쓰면서 그 안에서 만큼은 탈아입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지갑이나 노트속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화를 인쇄해서 코팅해놓은

책꽂이가 있는 것이었다. 

 

나의 등뒤로 さ...ら...に..라는 글자가 부채꼴모양으로 나타나면서 갑자기 알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또 우리 애기아빠가 말했다.

 

"당신이 그 학생들에게 위화감,질투심,열등감을 느낄 군번이야?'라는 말도 들려왔다.

 

나는 도서실관리를 하면서 알게된 3학년의 야마모토 히데미(山本 秀美)라는 학생에게 확인차

물어보았다. "히데미! 우와사니 요루또..." 그러자, 히데미는 웃으면서 

"센세이! 이제서야 아셨어요? 그건 신탈아입구에 속하는 학생들이 아니라도 신탈아입구의

사고방식으로 임하는 학생들이 한두명이 아니에요. 저도 그중에 한명이고요."

 

"뭐-어? 히데미! 너도?" "네에~"

 

히데미는 잠시 웃음으로 간격을 두더니만 말을 잇는다.

 

"저는 그 아이들 지금 뭐 부모님들을 잘 만나서 이타리아,이기리스,도잇츠,후란스,오란다 에는

한번도 못가는 입장이지만, 저는 하나라도 더 알아서 그 아이들의 뒤를 맹렬히 쫓아가는

편에 속하지요."

 

나의 등뒤에는 이미 부채꼴모양으로 또 사라니! 말고도 또 그뒤에 사라니! 가 또 떠올랐다.

 

어느날 꿈을 꾸었다. 내가 열심히 도로에서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여럿이 스쿠터를 타고 나를 앞서가면서

 

"센세이~!^^뭐하세요~? 빨리 따라오셔야지요~" "센빠이~!^^ 우리들 먼저 가 있어도 되겠지요?"

"감바레~! 감바레~! 감바레~!" "그러면 우리들은 먼저 갈께요. 오사키니~!"

 

나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쫓아가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얘들아! 같이 가! 제발 나랑 같이 가자니까!"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내가 네고또(잠꼬대)하는 것을 한이불 덮고 자는 우리 남편이 들었다.

 

"얘들아~! 제발 플리즈~! 같이 가자니까~"

 

우리남편은 잠꼬대를 하는 나를 흔들어깨우면서 내가 부시시 눈을 뜨자 

 

"무슨 일이야? 누군가 당신을 그렇게 놓고 도망가는데 그러는거야?"

 

나는 꿈속에 나온 학생들이 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이란 것을 도저히 말할 수 없었고

 

"응~, 그냥 좀 부담되는 일이 있어서..."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