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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 흉노의 역사.

黃遵守 2025. 2. 4. 20:29

고비사막 이북으로 물러난 흉노는 수세에 처했으면서도

 

줄곧 한에 대한 반격을 시도하였고 한은 그때마다 출격하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한도 무제 이후 흉노에 대한 강경책을 포기하고 우호관계의 수립을 도모하였다.

 

흉노는 기원전 600년경 선우의 계승을 둘러싸고  내부분열이 발생해

 

한때 5명의 선우가 대립하기도 하였다.

 

이후 형인 질지선우와 동생이 호한야선우가 대립하기도 하였다.

 

열세였던 호한야선우는 기원전 53년에 한에 항복하고 한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질지선우는 한의 공격을 받아 몽골고원에서 탈라스강까지 도피하였지만

 

결국 한의 원정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기원전 51년 호한야선우는 몽고의 흉노를 통일하고 한에 대해 스스로 신하를

 

자청하여 내조하였다. 한에서는 선우의 지위를 제후왕의 위에 두어

 

파격적으로 외신으로 우대하였고 종래대로 중국의 변경밖에서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한무제이래 흉노와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러나 왕망의 '신'정권때에 이민족에 대한 처우를 강등하였기 때문에

 

흉노는 격분하여 이반하였고 이후 우호관계는 단절되고 중국에 다시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후한초인 기원후 48년에 흉노에서는 다시 내부분열이

 

발생하여 일축왕 비(比)가 자립하여 호하이선우라 칭하고 여러 부족을 이끌고

 

한에 항복하였다. 후한에서는 이들 남흉노를 장성의 이남에 거주하도록 하고

 

그들의 북흉노 공격을 지원하였다.